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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정희 별세

1967년 ‘청춘극장’으로 데뷔
2010년 이창동 감독 ‘시’로 주목
말년 알츠하이머로 투병

배우 윤정희 별세 배우자 백건우 프로필배우 윤정희가 향년 79세로 지병인 알츠하이머 투병 중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윤정희는 1944년 7월 30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손미자이며 배우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이다. 백건우와는 1976년 결혼했다. 백건우와 윤정희는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윤이상 오페라 심청이 공연에 영화인 자격으로 신상옥 감독과 참석해 백건우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백건우는 윤이상과 잘 아는 사이였으며 회식에서 백건우가 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냥 헤어지고 윤정희가 다시 74년 프랑스 유학을 가서 한인 식당에서 다시 재회하면서 비밀 연애를 한다. 그리고 몽마르트 언덕에서 동거를 하며 1976년 결혼을 한다. 출생 1944년 7월 30일고향 부산전남여자고등학교조선대학교(2학년)우석대학교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파리 제3대학교 대학원2023년 1월 19일 별세

 

 

윤정희는 대종상 여우주연상 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3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3회를 수상했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으며 남정임, 문희와 함께 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다. 

배우 윤정희가 1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9.1960~70년대 은막의 스타로 크게 사랑받았던 고인은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을 중단한 지 16년 만인 지난 2010년에 스크린 복귀작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윤정희는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6년 합동영화사 주최의 신인배우 공모전에 참가해 1200:1의 경쟁을 뚫고 배우로 선발됐다. 김래성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청춘극장>(1967)로 데뷔해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해마다 30여편이 넘는 영화를 찍으며 문희·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다.

 

 

 

<강명화>(1967), <아빠 안녕>(1968), <물망초>(1969) 등 멜로드라마, <안개>(1967), <까치소리>(1967), <장군의 수염>(1968) 등 문예영화(예술영화), <그 여자를 쫓아라>(1970), <황금70 홍콩작전>(1970) 등 액션물, <내시>(1968), <이조 여인잔혹사>(1969) 등 사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다.

고인은 영화배우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대학 졸업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 여성 배우들의 변천사와 영화적 의미를 분석하는 논문을 써, 여성 배우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석사학위를 딴 학구적인 배우이기도 했다. 1973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그는 방학 때 귀국해 영화를 촬영하면서 학업과 영화 이력을 병행해 쌓아갔다.

 

 

고인은 1976년 프랑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해 잠정 은퇴하고 파리3대학에서 영화 공부를 이어나갔다. 이후 <자유부인>(1981), <위기의 여자>(1987) 등 몇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94년 엄종선 감독의 <만무방>에 출연하며 두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이후 16년 동안 영화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시를 쓰고 싶어 하는 가난한 노년 여성으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 작품으로 세번째 대종상을 수상했으며 칸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다.

 

 

2019년 백건우씨 인터뷰를 통해 10여년째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됐으며, 2022년에는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백건우씨와 딸에게 후견인 지위 이의 신청 소송을 하고, 백씨는 형제들이 연주비를 횡령했다고 고소하는 등 가족 간의 오랜 갈등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백씨와 딸 진희씨가 있다.

 

 

 

 

백건우 부인 아내 윤정희 나이 프로필 근황

 

잉꼬부부로 불렸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는 1976년 결혼했으며 딸 백진희 씨는 1977년생으로 리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백건우는 1946 5 10일 생으로 75세이며 윤정희는 1944 7 30일 생으로 77세입니다. 피아니스트인 백건우와 스타 배우인 윤정희의 만남은 1972년 독일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공연 때 영화인 자격으로 신상옥 감독과 참석했을 때 좌석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같은 한국인인 백건우에게서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백건우와 윤이상은 서로 잘 아는 사이로 백거우 역시 독일에 연주 여행 차 심청이 오페라를 보러 오게 되었으며 공연이 끝나고 회식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백건우는 윤정희에게 꽃 선물을 했고 서로 호감이 생겼지만 윤정희가 귀국한 후 백건우를 잊어버리고 마는데요. 2년이 지난 1974년 윤정희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면서 한국 교포 식당에서 백건우와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연인 관계로 발전 비밀연애를 이어갔으며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로 프랑스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비밀 연애를 이어가다 부모님처럼 모시던 화가 이응노 선생에게 자신들의 결혼 계획을 알리며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76 3월 파리에서 재불(在佛) 화가 이응로의 집에서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고 백금 반지 한 쌍을 나눠가지며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후 1977년 딸 백진희 씨를 출산했을 때 북한 남치 미수 사건에 연루가 되었으며 납북 진적 탈출하며 무사히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1977 7월 말 부모님처럼 모시던 화가 이응노 선생의 부인인 박인경의 권유로 당시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일가족이 납북(拉北) 위기를 겪게 됩니다.

 

 

다행히 납치 직전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미국 영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청해서 가까스로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백건우 윤정희 부부는 2021 2 백건우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아내를 장기간 방치했다"는 주장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으며 후에 청원인이 윤정희의 친정 가족이 올린 것으로 알려지게 되며 세간의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남편인 백건우는 소속사를 통해 해당 내용은 거짓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반박 입장문을 냈으며, “부부의 딸 아파트 바로 옆집에서 가족과 법원이 지정한 간병인의 따뜻한 돌봄 아래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주기적인 의사의 왕진과 치료와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백건우와 윤정희 부부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4시간씩 늘 함께 했다고 하는데요. 백건우는 2019년 인터뷰를 통해 아내 윤정희의 알츠하이머임을 털어놓으며 “10년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윤정희가 알츠하이머로 발병했을 때부터 병이 악화되는 2019년 초까지 늘 아내 곁에서 함께 연주를 다니며 보살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세가 점점 악화되며 남편의 얼굴만 알아볼 뿐 딸 백진희 씨 얼굴마저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이후 백진희 씨의 아파트 바로 엽에 집을 빌려 전문의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하루 세끼 식사는 백진희 씨가 챙긴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서울 출생, 1946 5 10 (75), 학력은 서울남산초등학교 (전학), 장충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줄리아드 스쿨 음악학교 (졸업), 줄리아드 스쿨 음악대학원 (중퇴), 1956년부터 현재까지 풍부한 레퍼토리와 서정적인 피아니즘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세계적인 연주자이며,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건우는 9세 때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 15살에 어려운 형편이지만 유학을 가며 힘들게 학업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이후 1971년 나움버그 콩쿠르(Naumberg Award)에서 우승, 1969년 리벤트리트 콩쿠르(Leventritt competition)의 결선에 올랐으며, 같은 해에 부조니 콩쿠르에 입상하며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어 1980년대부터 프로코피예프·라흐마니노프·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 같은 굵직한 녹음과 연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화배우 윤정희는 본명 손미자, 1944 7 30 (77), 학력은 전남여자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 2학년 수료), 고려대학교 (사학과 / 학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영화과 / 석사), 파리 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 석사), 1967년인 1200 1의 경쟁률을 뚫고 23세에 영화 청춘 극장으로 데뷔했습니다.

 

윤정희는 1960~1970년대 문희·남정임과 더불어 ‘1세대 트로이카로 불렸으며 30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대종상 여우주연상 3,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3,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3회에 빛나는 전설적인 대배우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어 윤정희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에서 주연을 맡아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카이로 영화제 평생 공로상 등을 받았으며 당시 그녀가 맡은 배역은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이었습니다.

 

이에 남편인 백건우와 딸 백진희 씨는 아내의 마지막 작품이 이창동 감독의 '시'여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렇게 좋은 감독에, 그렇게 좋은 영화로 배우로서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